나의 겨울

북극

 

   사토루가 메구미를 처음 본 건 방학 기간의 교무실에서였다. 센터 시험이 끝나고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들의 발걸음마저 끊긴 1월 하순. 다른 교사들이 모두 퇴근한 노을 무렵까지 자리에 앉아 시원찮은 실전 문제를 실은 교과서를 대체할 보조 교재를 만들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서성거리는 발걸음의 주인이 제게 용무가 있는 사람은 아니겠거니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 다시 들려온 발걸음이 제 발치에서 멈췄다. 사토루는 고개를 들고 옆에 선 사람을 봤다. 검은 코트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남자가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아직 계셨네요?” 붉어진 뺨 위로 겨울 공기를 잔뜩 묻힌 얼굴이었다.

 

   “저 아세요?”

   “선생님 아니세요?”

   “누구세요?”

   “다음 학기부터 여기서 근무할 사람인데요…. 그냥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사토루는 제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특이하게 부푼 검은 머리카락이 그가 떼는 걸음마다 나풀거리는 모습을. 찰나간 마주쳤던 녹색 눈의 이채는 오래 본 형광등의 잔상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 녹색을 떠올렸다. 그와 나눈 짧은 대화를 곱씹어 보기도 하고 자신은 배정 받은 학교를 처음 찾아갔을 때 어땠는지를 회상해 보기도 했다. 떠들썩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 늦은 오후를 골라 갔다가 빈 교무실의 창문 너머로 흘러드는 노을을 보고 왔던 기억이 떠오르자 웃음이 났다. 그 사람도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려 온 걸까? 남자의 이름이 궁금했다. 수많은 이름을 점쳐 봤는데.

 

   메구미란 이름은 예상도에 없었다. 그야 여자 이름이었으니까. “여자 이름이네요?” 말하자 그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하지만 저는 남자입니다” 쏘아뱉었다. 새 학기를 일주일 앞두고 진행된 신규 교사 환영식에서였다. 사토루는 머쓱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를 알아보고 그의 옆에 앉으면 역시 저를 알아본 그가 그때처럼 말을 걸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사토루에게 일절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름에 대한 코멘트가 실수였는지, 대화를 시도하면 단답으로 끊어내고 금세 고개를 돌렸다. 생김새에 비해 조금 도도한가? 그처럼 위로 올라간 눈꼬리는 보편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인상을 자아내곤 한다. 하지만 그는 표정이 묘하게 순해서, 다가오는 사람을 쳐낼 것 같지는 않았는데….

 

   담배를 피웠다. 술을 못 하는 걸 알면서도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한사코 잔을 쥐어주고 마는 동기의 등쌀을 못 이겨 사케를 두 잔쯤 마시고 늘어져 있는데 문득 옆자리에서 매캐한 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어느새 저와 그 사이에 스텐 재질의 재떨이도 놓여 있었다. 그걸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그날 중 처음으로 그가 먼저 사토루에게 말을 걸었다. “담배 냄새 싫어해요?” 사토루는 시선을 목소리 나는 곳으로 끌어올렸다. 녹색 눈동자가 저를 마주봤다. 그는 담배 냄새가 싫었지만 메구미가 제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달가워 고개를 흔들었다. 메구미는 입가에 담배를 붙인 채 사케 잔을 든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사토루는 영문도 모른 채 그가 내민 잔으로 손을 뻗었다.

 

   “뭐하는 거예요? 건배하자고요.”

   “아.”

 

   메구미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잔을 집어든 사토루와 잔을 부딪치곤 한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사토루는 그의 모든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잔을 내려 놓고,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내쉬고,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고, 이내 비벼 끄는 것까지.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는 손가락이 희고 길었다. 왼손에 찬 시계 위로 드러난 손목뼈는 군살 없이 가느다란 전체의 몸을 가늠케 했다. “술 잘 못 해요?” 그가 다시 물었다. 사토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곤 그에게 다시 건배를 청하지 않았다. 그가 취했다고 여겼는지 저를 넋 놓고 쳐다보는 그에게 주의를 주지도 않았다.

 

   그 해 새로이 채용된 교사는 셋이었다. 나머지 둘이 앉아있는 주위로 비교적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사토루와 메구미는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음량으로 조용히 대화를 이어갔다. 메구미는 그런 사람이었다. 소음에 질색하지만 혼자 남겨지는 것도 싫어하는. 목소리가 끊기면 끊기는 대로 두지만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면 퍼뜩 고개를 든다든지 누군가 사토루를 부르는 소리에 그가 응답이라도 하면 그를 따라 주위의 동향을 살피는 모습에서 알아챌 수 있었다. 취한 중에도 사토루는 자신이 메구미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불가항력적인 끌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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