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척

 

   주머니에 들어있던 스마트폰 액정 위로 표시된 날짜와 시간은 방금 전으로부터 1분도 지나지 않았다. 후시구로 메구미는 주술사의 길을 걷게 된 이후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말하면 정신이상자냐고 의심 받을 만한 기이한 일을 숱하게 겪었지만, 눈을 감았다 뜨자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적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혼자서는…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휴대전화 신호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아직도 이런 오지가 있다는 사실에 이타도리는 놀라서 세 번이나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아키타의 산 깊숙한 곳에서 길도 없는 험한 경사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밑이 훅 꺼졌었다. 앞서 가던 이타도리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고 뒤따라오던 쿠기사키가 지르는 새된 비명이 귀를 찔렀다. 후시구로는 괜찮다고 하려 했지만 눈을 떠 보니 그 둘은 온 데 간 데 없었고 자신만이 혼자 덩그러니 어딘가 낯익은 건물 내부에 남겨져 있었다. 

 

   세 사람이 쫓던 주령은 토착 신앙으로부터 태어나 제령하기엔 제법 까다로웠지만 그렇다고 결코 급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소년원에서 이타도리가 사망했던 건을 계기로 고죠가 상층부를 한 번 뒤집어 놨기 때문에 영역을 전개할 수 있는 특급 주령을 퇴치하는 일이 1학년 세 명에게 맡겨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주령의 영역으로 끌려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람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드는 사고를 치는 데 도가 튼 남자와 자라온 후시구로는 쉽게 놀라지 않고, 먼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어떤 결계를 이루는 주력은 미미하게 느껴졌지만 대상을 완전히 가두는 영역은 결코 아니었다. 비상사태에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한다며 고죠는 예고도 없이 불시에 후시구로를 환각술에 빠트리곤 했었다. 덕분에 후시구로는 아무리 정교한 환각이라도 쉽게 실제와 구분할 수 있었으니 감각을 속이는 술식도 아니었다. 

 

   건물 내부는 등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채로 어두웠다. 얼핏 보이는 창 바깥으로는 오래되어 잎이 빽빽하게 자란 정원수가 보였다. 이파리 사이를 지나 창으로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햇빛으로는 넓은 방 안을 전부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후시구로는 그림자에서 나고 자랐다. 이 두 눈은 암순응을 거칠 필요 없이 희미한 빛만 있어도 곧바로 주변을 볼 수 있었다. 

 

   “아.”

 

   두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본 후시구로는 오래지않아 눈을 뜨자마자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기껏해야 서너 번 왔던 곳이라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이곳은 교토에 있는 고죠 가문의 본가, 그중에서도 고죠와 후시구로가 머물곤 했던 후원 별채였다. 교토에는 몇 번 온 적도 없었는데 그때마다 후시구로는 고죠와 함께 이곳에서 묵었다. 이곳이 어딘지 깨닫자마자 시름을 조금 덜었다. 적어도 아예 모르는 장소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창가 옆에 놓인 긴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 누워 있는 남자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한 쌍의 푸른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후시구로가 잘 알다 못해 지겹도록 봐 온 눈이었다. 고죠 사토루는 신년이나 가문의 일정이 있을 때나 아주 가끔 입는 전통 복식을 차려 입고 있었다. 일 년에 몇 번 입지도 않는 주제에 그때마다 불편해 죽겠다며 투덜댔지만 후시구로는 고죠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입고 태어난 것마냥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후시구로가 아는 바로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었다. 따로 언질도 없었다. 또 뭔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이려고 하는 건 아닌가? 두 사람이 공유하는 캘린더에 적혀 있는 고죠의 일정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분명 ‘고전 대기’가 아니었던가? 후시구로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삼키며 벌컥 그의 이름을 외쳤다. 

 

   “고죠 선생님!”

 

   그러자 남자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선생님? 내가?”

   “여기 선생님이 당신 말고 누가 있어요?”

 

   그 남자의 목소리엔 어딘가 서늘한 구석이 있었지만 후시구로는 단순하게 또 잡아떼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당장 저 뻔뻔한 남자의 멱살을 쥐어 잡고 탈탈 털고 싶었다. 후시구로는 할 말이 많았다. 지금 태평하게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아키타에 있는 이타도리랑 쿠기사키는 무사한 겁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세요? 저는 왜 갑자기 눈을 감았다 뜨니 교토에 떨어진 거예요? 그리고 그 꼴은 대체 뭔지…. 하지만 몇 발짝 뗀 후 벌어진 입에선 당혹감에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무하한이었다. 고죠 사토루의 술식이 후시구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어, 후시구로는 더 이상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고죠의 불가침엔 일종의 필터가 설정되어 있다. 고죠가 무해하다고 판단하는 일체의 것들만이 그 필터를 통과해 그에게 닿을 수 있다. 

 

   고죠는 편의상 전투시가 아닌 평시에는 일괄적으로 모든 접촉을 차단한다. 위해 여부를 판단해 걸러내는 필터를 적용하는 것보단 모조리 차단하는 편이 주력 운용 면에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시구로는 대개의 경우 평시라도 언제나 그에게 닿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일방적인 거절은 정말이지… 지금껏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고죠… 선생님?”

 

   현대 최강의 술사라고는 하지만 후시구로는 한 번도 그에게 위압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의 두 눈을 마주치자 등골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을 감싸듯이 방 안에 들어찬 주력에 후시구로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밀도가 높은 주력이 주변을 둘러싸자 물속에 빠지기라도 한 양 숨이 턱 막혔다. 손끝을 까닥할 수조차 없었다. 당연히 인을 맺어 그의 앞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후시구로의 호흡, 박동, 사고를 전부 통제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껏 어느 누구를 앞두고도 느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감각이었다. 가쁘게 숨을 내쉬던 후시구로는 불현듯 깨달았다. 지금껏 자신이 ‘현대 최강의 술사’로서의 고죠 사토루는 단 한 순간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어깨 위를 짓누르는 무형의 감각에 후시구로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 아래로 겨우 눈동자만 굴려 그를 올려다봤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소리 없이 다가와 후시구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이상하게 차가워 보였다. 

 

   “왜 자꾸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나는 네게 단 한 가지를 빼고 아무것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이상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후시구로가 아는 건 전부 그가 가르쳐 준 것이다. 주술사로서의 모든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도 전부. ‘후시구로 메구미를 아는 고죠 사토루’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후시구로는 안간힘을 써 입을 벌렸다. 몇 번 숨을 헐떡댄 뒤에야 후시구로는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꼴사납게 목소리가 덜덜 떨리지 않도록 길게 심호흡을 한 뒤 겨우 말했다. 

 

   “당신…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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